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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 가의 사람들

hobby/Book

by nemoram 2006. 7. 1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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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고 있는 책이다. 록펠러라는 그 유명한 미국의 가문이야기.
스탠더드 트러스트라는 유명한 독점 석유유통 라인을 만들어냈고 그로 인해 막대한 부를 거머지었던 록펠러. 그로인해 반독점법이 탄생하게 됐고 많은 사람으로부터 악의 화신처럼 여겨져왔던 사람이자 가문이다. 나 역시 돈을 버는일에 관심이 있기때문에 이런 류의 책을 요즘 즐겨 읽는다.
이런책을 읽다보면 난 어떻게 부자가 될까가 고민이 되고 그러다보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나 묻게되고 그러다보면 어떤것에 관심을 가져야하나를 고민하게 되고 다음으로는 그럼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더해서 요즘 느끼는건 결국 내가 가고싶어하는 길은 자기 사업을 하는 길이겠구나 싶다.
그 길을 걷기를 두려워하면서 그들과 경쟁하고 싶어하는건 어불성설이 아닌가 싶다.
내가 과연 언제쯤이면 그 길을 걷겠다고 모든걸 거기에 투자하게 될까?
지금일까? 아니면 조금더 시간이 필요한걸까?
요즘 이런 고민이 날 감싸고 놓아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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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록펠러의 재산을 현 시세로 계산하면 빌 게이츠의 3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록펠러는 어떻게 해서 돈을 벌었고, 어떻게 살았으며, 또 어떻게 몰락했는가? 4대에 걸친 록벨러 가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과정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에 걸친 현대 자본주의의 역사이자, 미국의 현대사이기도 하다.

1부는 존 D. 록펠러 1세의 이야기. 말년에는 자선사업가로 변신해 록펠러 의학 연구소와 록펠러 재단을 설립하기도 하지만 리베이트와 뇌물 증여 등 갖가지 편법을 동원했던 그는 돈과 오명을 함께 벌어들였다. 2부는 록펠러 2세의 이야기이다. 그는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는데 공헌했지만 젊은 시절 주식 투자 실패와 각종 구설수에 오르는 등 곤욕을 치른 바 있다. 3부는 록펠러 2세의 다섯 아들, 일명 '형제들'로 불린 록펠러 3대의 이야기이다.

1세와 2세가 뿌린 씨가 3대째에 가서 탐스런 열매를 맺었지만 지나친 권력욕과 대중들의 반발로 왕조는 몰락하고 만다. 결국 4부에 등장하는 록펠러 '형제들'의 자녀 21명(일명 '사촌들')은 가문의 책임과 개인의 가치라는 두 갈래 길을 놓고 고민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거의 모두가 정신과 의사를 정기적으로 찾아가며 불행한 사생활로 점절한다. 거대한 가문의 이름과 돈의 멍에는 개인들이 감내하기에는 너무 벅찼던 듯 하다.


[미디어 리뷰]

경향신문 : 존 데이비슨 록펠러(1839~1937)는 미국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가문 록펠러가를 일으킨 사람이다. 100년 가까이 살면서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빌 게이츠의 3배가 넘는 돈을 벌었다. <록펠러 가의 사람들>은 이 천문학적 돈을 바탕으로 록펠러란 한 가문이 어떻게 흥성하고 쇠락하는가를 보여준다. 동시에 사회의 중핵에 포함된 소수 동질집단을 통해 미국 근현대사를 조명하고 있다. 다루는 기간은 4대, 1970년대까지이다.

존 데이비슨은 석유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비견되는 인물로는 철강의 카네기, 자동차의 포드 정도이다.

살아 생전 그의 재산에는 '더러운 돈'이란 명패가 붙어다녔다. 존 데이비슨은 어려서부터 일기 대신 회계장부를 기록했다. 숫자가 하루하루의 반성이었던 셈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곡물위탁판매회사에 경리사원으로 입사했다. 주급 4달러. 석유산업의 발흥은 셈과 관리에 능한 그에게 도약의 기회를 제공했다.

석유산업에 투신한 뒤 현장에 밀착해 원가절감 요소를 찾아냈다. 경비를 줄이면서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최적지점으로 모든 경영요소를 수렴했다. 그런 방식으로 타사에 비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까지는 모범적인 기업가로 불릴 만했다. 그러나 그는 그 경쟁력을 바탕으로 아예 경쟁을 회피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높아진 자체 경쟁력을 바탕으로 당시 물류를 담당하는 핵심수단인 철도를 장악했다. 그리곤 경쟁자들을 압박해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모든 '더러운' 수단이 동원됐다. 결국 존 데이비슨은 '스탠더드 트러스트'를 탄생시킨다. 미국 석유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한 독점기업체였다. 1911년 미 연방 대법원이 분할명령을 내리기까지 그는 엄청난 '검은 돈'을 모았다. 또한 반트러스트 법인 셔먼법에 의해 '스탠더드 트러스트'가 33개 소규모 석유회사로 나뉜 뒤에도 계속 치부할 수 있었다.

가문에 따라붙은 탐욕과 무자비함이란 낙인을 없애기 위해 존 데이비슨은 물론 후대에서 자선사업을 벌였다. 록펠러재단이 중심에 있었다. 자선과 후원은 최근의 게이츠에서도 볼 수 있듯 미국 거부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또한 우연찮게도 존 데이비슨 록펠러와 빌 게이츠는 창의성이나 개척정신으로 대변되는 기업가정신보다는 시장약탈형 악덕 자본가 정신으로 똘똘 뭉쳐있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

3대인 넬슨 올드리치(1908~79)도 록펠러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뉴욕주 주지사 4선에다 부통령을 역임했다. 공화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3번이나 나갈 정도로 백악관을 향한 끝없는 욕망을 불태웠다. 평생 권력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실패한 정치가로 기록되고 말았다. 할아버지와 손자 두 사람을 비롯, 나머지 등장인물을 우리에게 친숙한 한국 재벌가 사람들로 바꿔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검지 않은 돈은 없기 때문일까. - 안치용 기자 ( 2004-04-10 )


동아일보 : 협박과 매수를 통해 거대 독과점 기업을 구축한 아버지, 정계 거물 딸과의 결혼 그리고 자선사업과 문화사업을 통해 가문의 오명을 씻어내려 한 아들, 2대에 걸쳐 축적된 부와 권력을 바탕으로 대통령을 꿈꾼 손자, '가문의 영광'에 염증을 느끼고 뿔뿔이 흩어져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증손자들...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 일가의 4대를 추적한 이 책은 한국 재벌의 현대사가 그대로 오버랩된다. 저자들은 록펠러와 철도왕 밴더빌트, 강철왕 카네기, 금융왕 JP 모건 등 미국판 재벌의 탄생과 성장에 감춰진 협잡과 음모, 매수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창업주인 존 데이비슨 록펠러 1세(1839∼1937)는 비밀 카르텔 형성과 수송업계의 리베이트 제공('리베이트'라는 프랑스어가 영어로 대중화된 것은 이때다), 정치권 매수, 경쟁업체 협박 등을 통해 1881년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95%를 독점함으로써 정유업을 장악한다. 문어발식 확장, 중소기업 기술 빼앗기, 주가 조작 등 오늘날 일부 한국 재벌에 쏟아지는 비판은 고스란히 그의 장기였다. 심지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그 부를 가지고 얼마나 많은 선행을 하든지 간에 그 부를 쌓으며 저지른 악행을 보상할 수는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록펠러는 여느 졸부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비즈니스에서는 냉혹했지만 사생활에서는 근검 절약과 근면 성실의 화신이었다. 그는 평생 일기를 쓰듯 개인 회계장부를 썼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수입의 10분의 1 헌금'이란 원칙을 지켰다. 술, 담배, 여자를 멀리하는 금욕적 삶을 살았으며 가족을 최우선시했다.

그의 문제는 자신이 벌어들인 재산보다 주체 못할 만큼 불어나는 재산이 더 많았다는 점이다. 그가 사실상 은퇴한 1897년까지 그의 재산은 2억달러였다. 그러나 1913년에는 그 돈이 10억달러로 불어났다. 자동차산업의 발달로 주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890년을 기점으로 왕성해진 그의 기부활동은 사실상 돈벼락에 깔려 죽지 않으려는 자구책에 가까웠다.

그의 외아들 록펠러 2세(1874∼1960)는 더 철저한 금욕주의자였다. 그는 대학 2학년 때까지 춤추는 것이 도덕적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했고, 40대까지 아버지에게서 용돈을 받아썼다. 그의 평생은 예수의 삶을 연상시킬 정도로 오로지 아버지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한 종교적 사명감으로 점철됐다. 그는 아버지를 설득해 자선사업, 의료사업, 교육사업, 문화사업 등에 5억달러를 출연한다. 이는 그가 물려받은 재산과 같은 규모였다.

4명의 손자는 이를 발판으로 미국 정재계를 장악한다. 아시아전문가가 된 형 록펠러 3세(1906∼1978)를 제치고 '패밀리'의 적통을 물려받은 차남 넬슨(1908∼1979)은 대통령보좌관, 뉴욕주지사, 부통령을 역임하며 백악관행을 꿈꾼다. 3남 로렌스(94)는 항공업과 원자력 사업에 뛰어들고 초기 환경운동의 중심적 인물이 된다. 4남 윈스롭(1912∼1973)은 아칸소주지사가 되고 막내 데이비드(89)는 체이스맨해튼 은행의 지배자가 된다. 그러나 '공화당의 케네디'가 됐을지도 모를 넬슨은 오히려 그 진보성 때문에 좌절하고 다른 형제들도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역사의 뒤로 밀려난다.

수많은 증손자는 록펠러가의 일원임을 오히려 낙인처럼 껴안고 살아간다. 개중에는 록펠러 4세(제이 록펠러)처럼 상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주)으로 활약하는 이도 있지만 식당차 주인으로 살거나 남태평양으로 도피했다가 식인종에 잡아먹히는 이까지 나온다.

이 책은 그저 한 가문의 전기가 아니다. 숭고한 청교도적 가족윤리와 비즈니스 세계의 냉혹한 '정글의 법칙'이 공존하고 주체하기 힘들 만큼 쏟아지는 돈의 권능 앞에 쑥스러움(고립주의)과 우쭐함(예외주의)이 복합된 록펠러가의 역사는 바로 미국의 분열된 자화상이기도 하다. 미국적 전통이 어떻게 형성됐는가에 대한 저자들의 이런 정신분석학적이고 계보학적인 접근이야말로 1976년에 씌어진 이 책이 지금도 여전히 숨가쁘게 읽히는 이유다. - 권재현 기자 ( 2004-04-10 )


한겨레신문 : 광대한 국토와 자원, 그 위에서 펼쳐진 이민자와 그 후예들의 치열한 도전이 어우러져 미국이란 신천지에서 등장한 수많은 드라마의 정점에 '록펠러'라는 이름이 존재한다. 밴더빌트와 제이피 모건, 듀폰, 구겐하임, 멜런, 카네기 등 남북전쟁을 전후해 등장해 이후 세계 경제질서를 자신들을 위한 체계로 구축한 여러 재벌들 가운데에서도 록펠러라는 이름은 단연 첫머리에 오른다.

록펠러는 이후 100년 넘게 미국을 지배하는 하나의 축인 '록펠러가'를 만들어냈다. 책은 가히 '왕조'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았던 이 신화적 재벌가문의 4대에 걸친 흥망성쇠 이야기다.

1대인 존 데이비슨 록펠러 1세는 '더러운 자본가'와 '위대한 자선가'라는 두개의 극단적 평가를 들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석유를 발견하진 않았지만 석유를 찾아 부자가 된 사람들의 이권을 빼앗아 부자가 됐다. 그의 무기는 '리베이트'와 '트러스트'였다. 그는 리베이트로 석유 수송 철도를 지배했고, 기업 담합(트러스트)을 이끌며 미국 전체 석유의 95%를 독점했다. '더러운 돈'을 벌었다는 평생의 오명을 떨치기 위해 그는 노년에 집중적이고 치밀한 자선사업으로 이미지를 개선하면서 가문의 토대를 다졌다.

그의 아들 존 데이비슨 록펠러 2세는 각종 구설수로 오점도 남겼지만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무기로 록펠러 센터 등 많은 기관들을 설립하는 한편 자선사업에 전력투구했다. 그는 미국 전분야에 걸쳐 방대한 인맥을 바탕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해 록펠러가의 전성기를 일궜다.

록펠러가는 3대째에 접어들며 그 폭이 더욱 넓어진 대신 쇠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동생에게 장남의 권리를 빼앗긴 록펠러 3세는 아시아 문제 전문가이자 록펠러가의 양심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둘째 넬슨 록펠러는 부통령을 지내며 대권을 꿈꿨지만 스캔들에 휩싸여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셋째 로렌스 록펠러는 공격적 투자로 돈을 벌며 부를 이어갔고, 무능하다고 따돌림 당했던 넷째 윈스럽 록펠러는 낙향한 뒤 주지사까지 지냈어도 결국 집안과는 멀어지고 말았다.

마침내 4대째에 접어들면서 록펠러라는 이름은 후손들에게 부담스러운 멍에가 된다. 4대 록펠러들은 거의 대부분 정신과를 찾아갔을 정도로 '세습받은 자'로서의 혼란을 경험했다. - 구본준 기자 ( 2004-04-10 )


한국일보 : 1905년 초 미국 보스턴의 한 교회에서 10만 달러의 기부금을 놓고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평소 같으면 기부 사실을 알리고 찬송과 감사 기도가 이어졌을 테지만 이 돈이 존 데이빗슨 록펠러(1839~1937)의 지갑에서 나온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무자비하게 수많은 사람들을 위협하고 재산을 빼앗아 모은 더러운 돈을 당장 돌려보내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이 비스마르크와 함께 현대를 만든 두 사람 중 한 명으로 꼽은 록펠러. 철강왕 카네기와 더불어 초창기 미국 자본주의를 좌지우지 했던 이 거부(巨富)는 그를 유명인으로 만든 바로 그 재산 때문에 벌써 당대에 '악마' 취급을 당했다.

러셀이 그를 중요 인물로 꼽은 것도 "개인의 자유경쟁을 통해 보편적 복지를 달성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자의 꿈을 깨뜨렸다"는 좋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다. 2대에서 3, 4대로 이어지면서 가문의 오명은 서서히 거두어졌지만 후손은 '록펠러 왕국'의 일원이 아닌 평범한 개인으로 돌아가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 책은 포드, 케네디, 루스벨트 가문을 해부한 책을 써낸 저자들이 1976년에 낸 책을 완역한 것이다. 77년 삼성문화재단 삼성문화문고 가운데 이 책을 번역한 '록펠러가'가 있었지만 그것은 록펠러와 록펠러 2세를 중심으로 일부분만 옮긴 것이었고 벌써 절판됐다.

카네기가 그랬던 것처럼 말년에 자선사업가로 변신한 록펠러의 정신을 이어받아 록펠러 2세는 경영 일선에서 일찌감치 물러나 록펠러 센터를 설립하고 정치 경제 문화계에 걸쳐 방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저자들은 이때에 이르러 록펠러 가가 단순한 부잣집이 아니라 '왕조'나 '제국'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하고 있다.

록펠러 2세의 다섯 아들인 존 데이빗슨 록펠러 3세, 넬슨, 로런스, 윈스롭, 데이빗은 적지 않은 실패와 좌절을 겪지만 학계, 정계, 재계, 금융계 등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선대에 쌓은 재력과 인적 기반의 덕이었다. 록펠러 4대인 그들의 자녀 21명은 하지만 가문의 이름을 거부했다.

할아버지는 록펠러라는 '왕조'를 만들어냈지만 그것은 오히려 록펠러 가와 일반인 사이의 간극만 키웠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로 인해 가문이 분열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분열은 영웅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무력하고 비틀대며 지나치게 평범했다'.

850쪽에 가까운 이 두툼한 책은 이름난 한 가문의 흥망성쇠뿐 아니라 부분적으로 19세기 후반 이후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로도 읽을 수 있다. 비교적 공평한 시각에서 록펠러 가문의 4대를 추적한 저자들은 이 가문의 100여 년이 "그리 서사시답지 않다"며 "스탠더드 오일 설립 이후 록펠러 가의 모든 노력은 결국 인간 욕망의 허무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 김범수 기자 ( 2004-0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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